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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창경궁 제대로 돌아보기-#2[홍화문 일원] 창덕궁을 돌아보고.. 창덕궁에서 바로 창경궁으로 건너왔기에.. 통명전,환경전 명정전을 가로질러 홍화문까지 바로 달렸내요..^^ 뭐...무료 해설 출발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구요.. 홍화문을 통과해 외부에서 홍화문 풍경 한컷하고..바라봅니다. 다른 궁과는 다른 묘한 친근감이 느껴지는...... 되돌아 들어와 옥천교앞에서 해설사분과 함께 관람을 시작합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관람때에는 인원이 꽤 많던데.. 창경궁에서는 몇 명밖에 없어 속닥한 분위기내요..^^ 해설사분의 해설을 들으며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기 전에 창경궁 홍화문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창경궁 홍화문은... 창경궁의 중심부분이 동향이기 때문에 정문인 홍화문도 동쪽에 세워졌내요. 1484년(성종 15)에 창건, 임진왜란으로 ..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3 [궐내각사 & 구 선원전 일원] 낙선재를 돌아보는 것으로 해설사분과 함께한 관람을 끝내고... 혼자서 다시 역순으로 창덕궁을 돌아보내요..^^ 성정각..대조전...희정당...선정전...인정전... 인정문을 통해 다시 진선문으로..금천교까지 되돌아와서리.. 마지막으로 궐내각사와 구 선원전 일원을 돌아보기로 합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육체와 혼백의 분리로 해석하는데, 왕이나 왕비도 죽으면 육체는 시신이 되어 재궁(梓宮, 관)에 담기고, 하늘과 땅으로 흗어지는 혼백을 위해 신주(神主, 위패)가 만들어 지내요. 재궁은 빈전에 모셨다가 5개월 후에 산릉(무덤)에 묻으며, 신주는 혼전에 모셨다가 삼년상을 지낸 후 종묘로 옮겨 모시내요. 또한 죽은 왕을 모시기 위해 생전에 그려 둔 초상화인 어진을 선원전에 모신답니다. 산릉은 육신에 대해, ..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2 [낙선재 일원] 성정각을 돌아보고..창덕궁 후원 입구을 지나 창덕궁의 젤 동측에 위치한 낙선재 일원으로 이동합니다.. 낙선재..일전에 읽었던 '덕혜옹주'에서 몇번 접한 이름이라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듯 하내요. 낙선재는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처럼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라.. 둘러보다 보면 궁궐에 있는 건지 깜빡할 정도라니..ㅋㅋ 암튼 낙선재 일원을 돌아보기 전에 낙선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 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 등을 지어 수강재와 나란히 두었답니다. 이렇듯 낙선재는 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쪽의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그 동쪽의 낙선재와 건립시기가 비슷한 석복헌은 왕비인 경빈의 ..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1 [성정각 일원] 대조전을 돌아보고.. 희정당 동측편으로 돌아나오니... 바로 옆 성정각이.. 이곳이 세자가 생활했던 곳이라고 하니..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이라 세자는 완전 금지옥엽같이 대우하지 않았을까 싶내요..ㅎㅎ 암튼 4살 정도에 세자가 되어 10살 전후하여 성인이 되는 관례를 치르고 이어서 혼례를 치렸으며, 하루 세차례 교육과 독서, 틈틈이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문무를 겸비한 수련을 쌓았다고 하내요. 세자가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서 궐 안 동쪽에 거처를 마련하여 동궁(東宮)이라 했다는데..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인 성정각 일원을 돌아보기전에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정각은 세자의 교육장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답니다. 성정각은 단층이지만 동쪽에 직각으로 꺽인 2층이 누(樓)가 붙..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0 [대조전 일원] 대조전 출입문인 선평문앞에서 희정당내부를 돌아보고.. 바로 뒤돌아서.. 선평문을 통해 대조전으로 들어서내요. 대조전 일원을 돌아보기 전에 간단하게 살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내요.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입니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답니다. 이건하면서 창덕궁의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으며 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옆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내요. 원래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9 [희정당] 선정전을 돌아보고 되돌아 나와 다른 관람을 위해 이동... 희정당을 돌아봐야하는데.. 건물의 정면 출입구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선정전과 희정당 사이 공간으로 이동하내요. 희정당 서편 행각을 끼고 돌아 희정당 뒷편 대조전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들어서니.. 희정당에서 대조전쪽으로 이어지는 연결복도를 지나 대조전앞 선평문에서 희정당 뒷편을 바라보며... 내부를 관람할수 있게 되어 있더라구요. 다른 곳처럼 정면으로 들어서서 관람할 수 없어 쪼매 아쉬움이 있지만.. 어쩔수 없는 일... 간단하게 인정전에 대해 살펴보면..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내요.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8 [선정전 일원] 인정전을 돌아보고 인정전 동측의 광범문을 통해 선정전쪽으로 이동하내요. 선정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선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져 있답니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는데요.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했다내요.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을 비서실, 부속실로 이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으며,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기도 합니..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7 [인정전 일원] 금천교를 지나 진선문을 통과하니.. 다시 넓다란 마당이... 이 공간은 뭐하는 공간인지 모르겠내요. 진선문을 지나 만나는 인정전 외행각 마당은 서쪽 진선문 쪽이 넓고 동쪽 숙장문 쪽이 좁은 사다리꼴인데.. 이는 숙장문 바로 뒤에 산맥이 있어 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사다리꼴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태종은 이 마당이 반듯하지 못하다 하여 당시 건축감독을 하옥시킨일도 있었답니다. 창덕궁 건축 감독을 맡은 박자청은 고려말 내시 출신으로 조선개국 후에 궁궐 문을 굳게 지킨 일로 태조의 눈에 들어 왕을 경호하다가 창덕궁의 건축담당을 맡았으며, 제릉, 건원릉, 경복궁 수리, 청계천 준설, 경회루, 무악이궁, 현릉 등 많은 공사를 훙륭하게 수행하였고, 이후 공조판서, 우군도총제부판사의 ..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6 [돈화문 일원] 창덕궁을 소개하면서 관람순서대로 포스팅하다보니.. 창덕궁 후원을 먼저 포스팅하게 되었고... 6편째가 되어서야 창덕궁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살펴보게 되었내요.. 순서가 좀..ㅋㅋ 암튼 6번째 글만에 창덕궁에 대해 간단하게 나마 살펴보고.. 돈화문 일원에 대해서도 알아볼까 합니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으로 처음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했답니다. 임진왜란 때 한양의 궁궐들이 모두 불탄 후에 경복궁은 그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고 1610년(광해 2)에 창덕궁이 재건되내요. 그 후 창덕궁은 경복궁이 재건될때까지 270여 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5 [후원 : 연경당] 옥류천 일원을 돌아보고.. 오르막을 올라 언덕을 내려서니 안동 하회마을 고택의 담장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건물을 만나내요. 단청도 하지 않아서인지...정말 어느 사대부 살림집같은 분위기...정말 딱인듯...^^ 본격적으로 연경당을 살펴보기 전에 간단하게 연경당에 대해 살펴보면... 연경단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준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답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단청은 하지 않았내요.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고,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납니다. 서재인 선향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