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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흔적남기기&리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1 [성정각 일원] 대조전을 돌아보고.. 희정당 동측편으로 돌아나오니... 바로 옆 성정각이.. 이곳이 세자가 생활했던 곳이라고 하니..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이라 세자는 완전 금지옥엽같이 대우하지 않았을까 싶내요..ㅎㅎ 암튼 4살 정도에 세자가 되어 10살 전후하여 성인이 되는 관례를 치르고 이어서 혼례를 치렸으며, 하루 세차례 교육과 독서, 틈틈이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문무를 겸비한 수련을 쌓았다고 하내요. 세자가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서 궐 안 동쪽에 거처를 마련하여 동궁(東宮)이라 했다는데..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인 성정각 일원을 돌아보기전에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정각은 세자의 교육장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답니다. 성정각은 단층이지만 동쪽에 직각으로 꺽인 2층이 누(樓)가 붙.. 더보기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올해 추석연휴는 생각보다 긴듯 합니다..^^ 고향 찾으시는 분들은 운전 조심하시고... 먼길 떠나지 않는 분들은 모처럼의 여유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암튼 이웃님들 모두 모두... 긴 추석연휴 건강하고 알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0 [대조전 일원] 대조전 출입문인 선평문앞에서 희정당내부를 돌아보고.. 바로 뒤돌아서.. 선평문을 통해 대조전으로 들어서내요. 대조전 일원을 돌아보기 전에 간단하게 살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내요.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입니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답니다. 이건하면서 창덕궁의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으며 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옆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내요. 원래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9 [희정당] 선정전을 돌아보고 되돌아 나와 다른 관람을 위해 이동... 희정당을 돌아봐야하는데.. 건물의 정면 출입구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선정전과 희정당 사이 공간으로 이동하내요. 희정당 서편 행각을 끼고 돌아 희정당 뒷편 대조전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들어서니.. 희정당에서 대조전쪽으로 이어지는 연결복도를 지나 대조전앞 선평문에서 희정당 뒷편을 바라보며... 내부를 관람할수 있게 되어 있더라구요. 다른 곳처럼 정면으로 들어서서 관람할 수 없어 쪼매 아쉬움이 있지만.. 어쩔수 없는 일... 간단하게 인정전에 대해 살펴보면..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내요.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8 [선정전 일원] 인정전을 돌아보고 인정전 동측의 광범문을 통해 선정전쪽으로 이동하내요. 선정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선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져 있답니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는데요.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했다내요.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을 비서실, 부속실로 이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으며,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기도 합니..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7 [인정전 일원] 금천교를 지나 진선문을 통과하니.. 다시 넓다란 마당이... 이 공간은 뭐하는 공간인지 모르겠내요. 진선문을 지나 만나는 인정전 외행각 마당은 서쪽 진선문 쪽이 넓고 동쪽 숙장문 쪽이 좁은 사다리꼴인데.. 이는 숙장문 바로 뒤에 산맥이 있어 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사다리꼴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태종은 이 마당이 반듯하지 못하다 하여 당시 건축감독을 하옥시킨일도 있었답니다. 창덕궁 건축 감독을 맡은 박자청은 고려말 내시 출신으로 조선개국 후에 궁궐 문을 굳게 지킨 일로 태조의 눈에 들어 왕을 경호하다가 창덕궁의 건축담당을 맡았으며, 제릉, 건원릉, 경복궁 수리, 청계천 준설, 경회루, 무악이궁, 현릉 등 많은 공사를 훙륭하게 수행하였고, 이후 공조판서, 우군도총제부판사의 ..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6 [돈화문 일원] 창덕궁을 소개하면서 관람순서대로 포스팅하다보니.. 창덕궁 후원을 먼저 포스팅하게 되었고... 6편째가 되어서야 창덕궁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살펴보게 되었내요.. 순서가 좀..ㅋㅋ 암튼 6번째 글만에 창덕궁에 대해 간단하게 나마 살펴보고.. 돈화문 일원에 대해서도 알아볼까 합니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으로 처음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했답니다. 임진왜란 때 한양의 궁궐들이 모두 불탄 후에 경복궁은 그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고 1610년(광해 2)에 창덕궁이 재건되내요. 그 후 창덕궁은 경복궁이 재건될때까지 270여 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5 [후원 : 연경당] 옥류천 일원을 돌아보고.. 오르막을 올라 언덕을 내려서니 안동 하회마을 고택의 담장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건물을 만나내요. 단청도 하지 않아서인지...정말 어느 사대부 살림집같은 분위기...정말 딱인듯...^^ 본격적으로 연경당을 살펴보기 전에 간단하게 연경당에 대해 살펴보면... 연경단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준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답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단청은 하지 않았내요.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고,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납니다. 서재인 선향재..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4 [후원 : 옥류천 일원] 존덕정 일원을 돌아보고... 다시 언덕길을 올라 내려서니... 깊은 골짜기를 만나게 되는데...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수 있는 옥류천 일원이내요. 옥류천 일원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면..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르고 있는데 1639년(인조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깍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을 벌이기도 했다내요.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랍니다. 소요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 청의정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3[후원:존덕정 일원] 애련지와 의두합을 돌아보고... 천연기념물 뽕나무도 관람하고.. 이동한 곳... 이제껏 보았던 정형적인 연못이 아닌.. 곡선으로 이루어진 자연적인 느낌의 관람지.. 그리고 그 주변 지형대로 지어진 정자들... 넘 운치있는 풍경이 펼쳐지는 존덕정 일원을 돌아봅니다. 먼저 존덕정에 대해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이 있는 존덕정 일원...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이며, 원래 모습은 메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답니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