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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1 [성정각 일원] 대조전을 돌아보고.. 희정당 동측편으로 돌아나오니... 바로 옆 성정각이.. 이곳이 세자가 생활했던 곳이라고 하니..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이라 세자는 완전 금지옥엽같이 대우하지 않았을까 싶내요..ㅎㅎ 암튼 4살 정도에 세자가 되어 10살 전후하여 성인이 되는 관례를 치르고 이어서 혼례를 치렸으며, 하루 세차례 교육과 독서, 틈틈이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문무를 겸비한 수련을 쌓았다고 하내요. 세자가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서 궐 안 동쪽에 거처를 마련하여 동궁(東宮)이라 했다는데..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인 성정각 일원을 돌아보기전에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정각은 세자의 교육장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답니다. 성정각은 단층이지만 동쪽에 직각으로 꺽인 2층이 누(樓)가 붙.. 더보기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올해 추석연휴는 생각보다 긴듯 합니다..^^ 고향 찾으시는 분들은 운전 조심하시고... 먼길 떠나지 않는 분들은 모처럼의 여유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암튼 이웃님들 모두 모두... 긴 추석연휴 건강하고 알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10 [대조전 일원] 대조전 출입문인 선평문앞에서 희정당내부를 돌아보고.. 바로 뒤돌아서.. 선평문을 통해 대조전으로 들어서내요. 대조전 일원을 돌아보기 전에 간단하게 살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내요.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입니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답니다. 이건하면서 창덕궁의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으며 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옆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내요. 원래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더보기
검은 활 - 바람,숲 그리고 선택 [최윤정 역사소설] 어느날 갑자기 이웃 블로거 아디오스님에게서 문자가... 책리뷰에 참여할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문자에.. 망설임 없이 신청을...ㅎㅎ 부산의 대표 문화,나눔 단체 문화공간 "두잇"에서 지역 저자응원 프로젝트의 일환로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한다고 하니.. 더욱더 큰의미가 있지 싶으내요..^^ 책 전면 표지 아디오스님께 문자를 보내고 몇일을 기다려... 받아본 책... 첨 책을 받아 표지를 본 순간... 역사소설이라... ^^ 왠지 이우혁님의 '치우천왕기'가 떠오르는 분위기에 확~~ 끌리더라구요..^^ "낙랑의 단궁이 동예에서 산출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한줄의 글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니.. 대단한 역사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이 결합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표지를 넘기며 .. 더보기
DOOR-#55 자꾸만... 들려다 보게 만드는... 묘한 끌림.... @복산동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9 [희정당] 선정전을 돌아보고 되돌아 나와 다른 관람을 위해 이동... 희정당을 돌아봐야하는데.. 건물의 정면 출입구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선정전과 희정당 사이 공간으로 이동하내요. 희정당 서편 행각을 끼고 돌아 희정당 뒷편 대조전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들어서니.. 희정당에서 대조전쪽으로 이어지는 연결복도를 지나 대조전앞 선평문에서 희정당 뒷편을 바라보며... 내부를 관람할수 있게 되어 있더라구요. 다른 곳처럼 정면으로 들어서서 관람할 수 없어 쪼매 아쉬움이 있지만.. 어쩔수 없는 일... 간단하게 인정전에 대해 살펴보면..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내요.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8 [선정전 일원] 인정전을 돌아보고 인정전 동측의 광범문을 통해 선정전쪽으로 이동하내요. 선정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선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져 있답니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는데요.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했다내요.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을 비서실, 부속실로 이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으며,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기도 합니.. 더보기
DOOR-#54 여러가지 모양의 창을 한꺼번에 만날수 있었던 곳... 다양한 형태로 세상을 바라볼수 있었지 싶으내요..^^ 사각의 카메라 앵글에서 놓칠수 있는 시선... 상상해 봅니다~ @수안동 더보기
이젠 부담스럽지 않은 햇살속에서... 늦은 오후.. 울집 복덩이와 함께... 아파트 주변 마실을... 이젠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초가을 햇살이 넘 따스하니 좋으내요.. 참 계절은 어쩔수 없는 듯 합니다..^^ 일교차가 큰 요즘... 건강관리 잘 하시길....^^ @복덩이와 함께 울아파트 주변 산책길에... 2015.9.13 더보기
창덕궁 제대로 돌아보기-#7 [인정전 일원] 금천교를 지나 진선문을 통과하니.. 다시 넓다란 마당이... 이 공간은 뭐하는 공간인지 모르겠내요. 진선문을 지나 만나는 인정전 외행각 마당은 서쪽 진선문 쪽이 넓고 동쪽 숙장문 쪽이 좁은 사다리꼴인데.. 이는 숙장문 바로 뒤에 산맥이 있어 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사다리꼴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태종은 이 마당이 반듯하지 못하다 하여 당시 건축감독을 하옥시킨일도 있었답니다. 창덕궁 건축 감독을 맡은 박자청은 고려말 내시 출신으로 조선개국 후에 궁궐 문을 굳게 지킨 일로 태조의 눈에 들어 왕을 경호하다가 창덕궁의 건축담당을 맡았으며, 제릉, 건원릉, 경복궁 수리, 청계천 준설, 경회루, 무악이궁, 현릉 등 많은 공사를 훙륭하게 수행하였고, 이후 공조판서, 우군도총제부판사의 .. 더보기